잿더미 위에서 피어나는 아픔, 그리고 문화재라는 이름의 거울
내장사 대웅전 방화를 계기로 숭례문 화재와 외세의 약탈, 전쟁·자연재해·무관심 등 문화재가 겪은 수난을 돌아보며 문화유산을 지키는 태도를 묻는다.
지난 주 유난히 하늘이 높고 공기마저 쾌청했던 어느날, 친구의 소설 출판을 축하하는 뜻깊은 자리에 동행했다. 남도의 아스라한 정취와 함께 때이른 단풍이 물들어가는 풍경에 이끌려 정읍의 내장사에 들렀다. 고즈넉한 산사의 가을을 만끽하려던 기대는 대웅전 앞에 다다르는 순간 서늘한 충격으로 바뀌었다. 몇 년 전 화재의 아픔을 딛고 비계와 가림막은 걷어냈으나, 대웅전은 아직 단청도 입지 못한 채 벌거벗은 목재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서 있었다.
단지 단청 없는 벌거벗은 건물을 마주한 것만이 슬펐던 것은 아니다. 더 참담했던 점은 이 비극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저지른 고의적 방화였다는 사실이다. 성스러워야 할 공간이 이기심과 갈등의 불길에 휩싸여 두 번이나 잿더미가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인간이 문화유산 앞에 저지르는 파괴적 태도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문득, 내장사의 이 참담한 상처가 비단 유독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흔히 문화재의 수난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약탈이나 전쟁의 참화 같은 거대한 외풍을 쉽게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내장사의 상처처럼, 우리의 무관심과 방심, 혹은 인간의 그릇된 악의가 내부에서부터 소중한 유산을 갉아먹어 온 역사도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 기회에 켜켜이 쌓인 우리의 부끄러운 상처의 기록들을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역사 속에서 문화재가 겪어낸 수난은 참으로 가혹했다. 가장 먼저 떠올리는 비극 중 하나는 2008년 발생한 숭례문 방화 사건이다. 토지 보상금 문제에 불만을 품은 60대 남성이 신나를 뿌려 불을 지르면서, 조선 건국 이래 600여 년간 자리를 지켜온 국보 제1호의 목조 누각이 하룻밤 사이 무참히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문화재 관리의 허술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인 경종이었으며, 국가 주요 문화재에 대한 상시 경비 및 방재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혁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
외세의 침략과 약탈로 얼룩진 아픔도 빼놓을 수 없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은 강화도를 침략하여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를 기록한 외규장각 의궤와 지도 등 수백 점의 문화재를 무참히 강탈해 갔다. 오랜 세월 해외에 방치되었던 이 기록들은 2011년이 되어서야 '임대 후 영구 대여'라는 절충안 형식으로 겨우 돌아올 수 있었지만, 약탈 문화재 반환 운동의 험난한 상처를 고스란히 남겼다. 또한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이라는 극단적 참화 속에서는 불국사의 목조 건물들이 왜군의 방화로 전소되었고, 조선왕조실록 보관소가 파괴되면서 귀중한 역사 기록이 영구히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은 문화재에게 있어 영혼마저 말살당하던 암흑기였다. 조선총독부는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경복궁 내 전각의 90% 이상을 헐어내고 그 정면에 총독부 건물을 세웠으며, 수많은 왕실 미술품과 문화재를 일본으로 무단 반출했다. 이와 맥을 같이하여 오대산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등도 도쿄대학으로 불법 반출되었고, 설상가상으로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발생한 화재로 상당수가 소실되는 비극을 맞이했다. 물리적 파괴를 넘어 한 국가의 정체성을 도려내려 했던 치밀하고도 조직적인 수탈이었다.
해방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터져 나온 한국전쟁은 국토뿐만 아니라 문화재에도 치명상을 입혔다. 오대산 월정사를 비롯한 유서 깊은 사찰들이 공비 토벌 및 전투 과정에서 소실되었고, 지리산 일대에서도 화엄사와 쌍계사 등이 군사 작전 명목으로 파괴될 위기에 처했으나 승려들과 지역 양심 세력의 눈물겨운 저항으로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전쟁의 폭력성 속에서 문화재는 늘 가장 먼저 희생되는 소모품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자연재해 앞에 무력하게 무너진 아픔도 크다. 2005년 봄, 강원도 양양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천년고찰 낙산사를 집어삼키며 조선 세조 때 주조된 보물 낙산사 동종을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리게 했다. 기후변화와 자연재해가 목조 문화재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준 뼈아픈 경고였다.
여기에 우리의 무관심이 빚어낸 과오도 깊다. 삼국시대 신라의 영토 확장을 증명하는 국보 제3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오랜 세월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비석거리의 주춧돌이나 빨래터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었으며, 이후 수습 과정에서도 관리 부실로 비면이 크게 마멸되는 손상을 입었다. 눈에 띄지 않거나 용도를 모른다는 이유로 우리 스스로 문화유산을 천대했던 뼈아픈 자화상이다.
다시 발길을 돌려,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서게 한 내장사의 비극을 떠올려본다. 2012년 술에 취한 사찰 관계자의 방화로 대웅전이 불탔던 아픔이 채 아물기도 전인 2021년, 이번에는 사찰 내부의 갈등을 빚던 승려의 고의 방화로 대웅전이 또다시 잿더미가 되었다. 외부의 적이 아니라 가장 안전해야 할 성지 안에서, 인간의 그릇된 감정과 갈등이 불길이 되어 소중한 유산을 두 번이나 파괴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안겨준다.
우리가 지나온 문화재 수난의 역사는 단순히 '옛것이 불타고 부서졌다'는 물리적 손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뿌리와 기억, 그리고 정체성이 통째로 지워지는 아픔이다. 외세의 약탈은 불가항력적이었다 할지라도, 방화와 방심, 무관심으로 인해 내부에서부터 소중한 유산을 갉아먹어 온 역사는 이제 끝내야 한다.
친구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문학의 향기 속에서, 문득 마주한 내장사의 잿더미는 우리에게 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온전히 지켜낼 자격이 있는가. 문화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역사의 비극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