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없는학교 [1주년 특집 연재][5회] 헌신: 붉은 빚을 푸른 싹으로 틔운 ‘역사의 스승’후쿠오카의 바람 끝에서 만난 이름, 우장춘
울타리없는학교 [1주년 특집 연재] [5회] 헌신: 붉은 빚을 푸른 싹으로 틔운 ‘역사의 스승’ 후쿠오카의 바람 끝에서 만난 이름, 우장춘 지난 3월 16일, 봄기운 완연한 후쿠오카 거리를 지날 때였습니다. 가이드의 입에서 흘러나온 ‘우장춘’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차창 밖 풍경을 멈춰 세웠습니다. 이곳은 그가 세계적인 논문 ‘종의 합성’을 집필했던 농사시험
울타리없는학교 [1주년 특집 연재]
[5회]
헌신: 붉은 빚을 푸른 싹으로 틔운 ‘역사의 스승’
후쿠오카의 바람 끝에서 만난 이름, 우장춘
지난 3월 16일, 봄기운 완연한 후쿠오카 거리를 지날 때였습니다. 가이드의 입에서 흘러나온 ‘우장춘’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차창 밖 풍경을 멈춰 세웠습니다. 이곳은 그가 세계적인 논문 ‘종의 합성’을 집필했던 농사시험장이 있던 곳입니다. 화려한 여행지의 풍광보다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이 타향의 흙을 일구며 그가 짊어졌을 ‘운명의 무게’였습니다. 여행은 잊혔던 기억을 소환해 현재의 삶과 연결하는 고귀한 학습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가혹한 유산과 어머니의 준엄한 가르침
우장춘의 삶은 태생부터 비극적이었습니다. 을미사변에 가담한 아버지 우범선으로 인해 그는 평생 ‘역적의 자식’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일본에선 조센징이라 멸시받고, 조선에선 매국노의 자식이라 손가락질받던 고독한 경계인.
그를 건져 올린 건 일본인 어머니의 숭고한 가르침이었습니다. “네 아버지가 조국에 진 빚이 너무 크다. 공부해서 그 빚을 갚아라.” 우장춘은 그 가르침에 순종했습니다. 이름에서 '우(禹)'라는 성을 끝까지 지킨 것은, 반드시 갚아야 할 부채를 잊지 않겠다는 처절한 자기 다짐이었습니다.
'종의 합성' - 다윈을 넘어선 과학적 투쟁
그는 1935년, 서로 다른 종이 교배되어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있다는 '우의 삼각형(U's Triangle)' 이론을 발표하며 세계를 경악게 했습니다. 흔히 알려진 '씨 없는 수박'은 육종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시연용이었을 뿐, 그의 진짜 업적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생존의 종자'들에 있었습니다.
해방 후 폐허가 된 조국, 종자 공급이 끊겨 굶주림에 시달리던 민족을 위해 그는 일본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홀홀단신 귀국했습니다. “여생을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일하며 조국에 뼈를 묻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텅 빈 조국에 식량 주권을 세우다
그는 부산 동래에 둥지를 틀고 우리 토양에 맞는 종자 개량에 혼신을 다했습니다. 소금물에 무르지 않는 '한국형 배추'를 탄생시켜 민족의 식문화인 김장을 완성했고, 제주 감귤과 강원도 씨감자를 일궈냈습니다.
1959년 임종 직전,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가슴에 얹은 그는 “조국이 나를 인정했다.”며 아이처럼 오열했습니다. 평생을 짓눌렀던 매국노의 아들이라는 무거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마침내 온전한 한국인으로 회귀하는 해방의 눈물이었습니다.
[울타리 없는 학교 교장의 마무리]
후쿠오카 농사시험장 터에서 시작된 저의 짧은 여정은 우장춘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마주하며 끝이 났습니다. 그는 굶주린 민족의 밥상을 차려준 '농업의 세종대왕'이자, 가문의 과오를 애국으로 씻어낸 '역사의 스승'이었습니다.
우리가 먹는 김치 한 조각, 귤 한 알에는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한 과학자의 숭고한 눈물이 서려 있습니다. 이번 여정에서 제가 심은 ‘아쉬움의 씨앗’도 언젠가 그분처럼 누군가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희망의 열매’로 맺히길 꿈꿔봅니다.
지난 일주일, '울타리 없는 학교'의 복도를 함께 걸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배움에는 졸업이 없듯, 우리의 여행도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연재를 모두 마치며 하나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에는 어떤 씨앗이 심어지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소감을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