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없는학교 [1주년 특집 연재][3회] 성찰: 화려한 도심 뒤편, 우리가 갚아야 할 ‘기억의 빚’
울타리없는학교 [1주년 특집 연재] [3회] 성찰: 화려한 도심 뒤편, 우리가 갚아야 할 '기억의 빚’ 역사 교사의 눈에 맺힌, 미처 닿지 못한 풍경 지난 3월, 크루즈 선사의 초청으로 떠난 후쿠오카 팸투어는 화려하고 다정했습니다. 나카스 강변에 흩날리던 벚꽃잎과 모모치 해변의 세련된 도심 풍경은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죠. 하지만 평생 역사를
울타리없는학교 [1주년 특집 연재]
[3회]
성찰: 화려한 도심 뒤편, 우리가 갚아야 할 '기억의 빚’
역사 교사의 눈에 맺힌, 미처 닿지 못한 풍경
지난 3월, 크루즈 선사의 초청으로 떠난 후쿠오카 팸투어는 화려하고 다정했습니다. 나카스 강변에 흩날리던 벚꽃잎과 모모치 해변의 세련된 도심 풍경은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죠. 하지만 평생 역사를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이야기해 왔던 제게, 이번 여행은 내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한 여정이었습니다.
제 시선은 자꾸만 지도 위의 한 점, 바로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 선생이 짧고도 찬란한 생을 마감했던 '후쿠오카 형무소' 터를 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그곳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에, 단체 일정이라는 제약에 묶여 그 거룩한 장소로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던 현실은 교육자로서 묵직한 '부채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차가운 벽에 새겨진 청춘의 문장과 눈물
우리가 화려한 도심을 즐기는 동안, 그 담장 너머에서는 두 청년의 고결한 영혼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고종사촌이자 평생의 동지였던 두 사람. 윤동주 시인은 우리말로 시를 쓰며 민족의 혼을 일깨우려 했다는 이유로, 송몽규 선생은 치열하게 독립의 방략을 고민했다는 이유로 '사상범'의 굴레를 썼습니다.
해방을 불과 몇 달 앞둔 1945년 초, 그들은 정체 모를 주사를 맞으며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는 치욕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던 시인의 맑은 영혼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던졌던 활동가의 투지는 후쿠오카의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 그렇게 스러져갔습니다. 그들이 견딘 고통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뿌리이자 우리가 갚아야 할 '기억의 빚'입니다.
고난의 길을 희망의 여정으로 탈바꿈시키는 꿈
이제 저는 이 묵직한 부채감을 기획의 동력으로 삼으려 합니다. 오로지 과거의 슬픔을 되새기는 데 머물지 않고, 두 청년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자기 삶의 주체가 되는 의지’를 배우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후쿠오카 구치소를 기점으로 독립운동가들이 걸었을 저항과 사유의 루트를 따라가며, "그 시절 청년이었던 그들이 내린 선택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방황하는 학생들에게는 삶의 동기를, 어른들에게는 자유의 무게를 되새기게 하는 '발자취 여행'을 디자인하는 것, 그것이 제가 이 학교에서 내드리는 숙제이자 비전입니다.
언젠가 다시 마주할 그날을 기약하며
이번 방문이 눈으로 본 풍경의 조각들이었다면, 다음 여정은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는 역사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팸투어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느꼈던 아쉬움은 역설적으로 더 단단한 기획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다시 그곳을 찾는 날, 저는 빚진 마음을 내려놓고 대신 그 자리에 더 단단해진 역사의식과 희망찬 비전을 채워오려 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학생들이 그분들의 꿈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돕는 '꿈의 길잡이'로서의 행보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울타리없는학교 교장의 한마디]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웁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구처럼, 후쿠오카의 바람 속에는 여전히 그들의 숨결이 남아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별을 바라보며 걷고 계신가요?
다음 주에는 미움의 바다 위에서 평화의 징검다리를 놓았던 조선통신사의 길로 안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