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없는학교 [1주년 특집 연재][4회] 평화: 미움의 바다를 건너 소통의 징검다리를 놓다
울타리없는학교 [1주년 특집 연재] [4회] 평화: 미움의 바다를 건너 소통의 징검다리를 놓다 에도 막부가 간곡히 청했던 '평화의 전령', 조선통신사 후쿠오카는 근현대의 아픔뿐만 아니라, 200년 넘게 이어진 한일 우호의 상징인 '조선통신사'가 반드시 거쳐 가야 했던 전략적 기항지였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고립되었던 에도 막부에게 통신사의 방문은 정권의 정당
울타리없는학교 [1주년 특집 연재]
[4회]
평화: 미움의 바다를 건너 소통의 징검다리를 놓다
에도 막부가 간곡히 청했던 '평화의 전령', 조선통신사
후쿠오카는 근현대의 아픔뿐만 아니라, 200년 넘게 이어진 한일 우호의 상징인 '조선통신사'가 반드시 거쳐 가야 했던 전략적 기항지였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고립되었던 에도 막부에게 통신사의 방문은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막부는 한 번의 행차에 국정 예산 1년 치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으며 이들의 방문을 간곡히 청했습니다.
통신사가 머무는 곳마다 일본의 문인과 화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 교류의 중심에 후쿠오카가 있었습니다. 특히 고구마를 들여온 조엄 정사는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씨고구마를 품어 왔습니다. 그가 가져온 작은 작물은 수많은 생명을 살려낸 기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강항 선생의 피눈물 어린 기록, 『간양록』과 일본 유학의 서광
하지만 이 평화의 길 뒤편에는 뼈를 깎는 고통의 역사도 존재합니다.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수은(睡隱) 강항 선생은 정유재란 당시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는 참혹한 비극을 겪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바다 위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던 그의 가슴은 갈가리 찢겼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적국에서의 고초를 잊지 않기 위해 피눈물로 『간양록』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고난의 시간은 일본 유학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토 상국사(相國寺)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승려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는 서른두 살의 젊은 유학자 강항의 깊은 학문에 감복했습니다.
강항 선생은 그에게 성리학의 정수를 전수했고, 가르침을 받은 후지와라 세이카는 불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일본 근세 유학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주자학을 바탕으로 양명학까지 포용했던 이 흐름은 훗날 동경대학의 설립과 일본 무사도 정신의 철학적 뿌리가 되었습니다.
참혹한 전쟁의 포로로 끌려왔지만, 칼보다 강한 붓의 힘으로 적국에 문명의 빛을 전한 것입니다. 일본 땅에 세워진 강항 선생의 현창비는 바로 이러한 경외심의 산물입니다. 1600년 귀국하여 고향 영광에서 은거하며 제자들을 길러낸 선생의 형형한 정신은, 오늘날 후쿠오카를 포함한 규슈 곳곳의 길목마다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통신사의 섬' 아이노시마(相島)를 향한 약속
이번 여정에서 직접 발을 내딛지는 못했으나, 제 마음은 이미 후쿠오카현의 작은 섬 아이노시마의 해안선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통신사의 섬'이라 불리는 이곳은 험한 바다를 건너온 사절단이 전열을 가다듬던 거점이었습니다.
섬마을 사람들이 조선의 귀한 손님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고 필담을 나누었던 기록은, 국가 간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인간적인 환대'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비록 이번 팸투어에서는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 섬의 흙을 밟고 환대의 흔적을 직접 확인하게 될 그날은 제 인생의 또 다른 역사적 조우가 될 것입니다.
축제 기획력에서 찾는 미래: 텍스트를 넘어 오감으로
일본 지자체들이 조선통신사를 현대적인 축제로 승화시켜 지역 주민들과 공유하는 모습은 인상적입니다. 전통 복장을 입고 참여하며 역사적 서사를 현대적 퍼레이드로 재해석하는 그들의 역동성은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대목입니다.
역사가 텍스트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의 오감을 자극하며 현재와 호흡하게 만드는 것. 강항의 고뇌와 조엄의 애민 정신, 그리고 아이노시마의 환대를 엮어 세상에 없던 인문학 여행 상품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교육자이자 기획자로서 제가 가진 포부입니다. 아쉬움은 이미 더 완벽한 여정을 설계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울타리 없는 학교 교장의 한마디]
"진정한 소통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과거의 원한을 딛고 평화를 꿈꿨던 선조들처럼, 우리도 서로의 울타리를 낮추고 진심으로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다음 주에는 이번 연재의 대미를 장식할, 경계에 선 과학자 우장춘 박사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