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없는학교 [1주년 특집 연재][2회] 저항:"나는 개새끼로소이다"국경을 허문 혁명적 사랑
울타리없는학교 [1주년 특집 연재] [2회] 저항: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국경을 허문 혁명적 사랑 시(詩) 한 줄로 시작된 운명적 만남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으신 양반의 가랑이 아래에서 뜨거운 것이라도 내뿜는..." 박열 의사가 쓴 시 ‘개새끼’의 첫 구절입니다. 일본의 심장부에서 아나키즘 운동을 펼치던 청년 박열, 그리고 이 도발적인 시에 반해 그
울타리없는학교 [1주년 특집 연재]
[2회] 저항: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국경을 허문 혁명적 사랑
시(詩) 한 줄로 시작된 운명적 만남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으신 양반의 가랑이 아래에서 뜨거운 것이라도 내뿜는..."
박열 의사가 쓴 시 ‘개새끼’의 첫 구절입니다. 일본의 심장부에서 아나키즘 운동을 펼치던 청년 박열, 그리고 이 도발적인 시에 반해 그와 운명을 함께하기로 한 일본 여인 가네코 후미코. 두 사람의 만남은 세속적인 연정을 넘어, 거대한 제국주의라는 울타리에 정면으로 맞선 하나의 거사(擧事)였습니다.
가네코 후미코, 조선의 아픔을 가슴에 품다
일본인인 그녀가 왜 조선의 독립운동가와 뜻을 함께했을까요? 그녀는 불우했던 유년 시절을 조선의 충북 부강에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그녀는, 일제의 폭력에 맞서 만세를 외치는 조선 민중의 모습에서 권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고결함을 발견했습니다. "조선인들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임을 깨달은 그녀에게 국적은 이미 장애물이 아니었습니다.
재판정의 사자(獅子), 그리고 감옥의 불꽃
천황 암살 모의라는 ‘대역죄’ 혐의로 체포된 두 사람. 박열 의사는 재판정에서 조선의 예복을 입고 당당히 조선어로 답변하며 일제의 근간을 흔들었습니다. 가네코 후미코 역시 일제의 위선적인 감형장을 찢어버리며 천황의 자비를 거부했습니다.
그녀는 결국 1926년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고, 박열 의사는 홀로 남아 후쿠오카 형무소 등지에서 22년 2개월이라는 기록적인 수감 생활을 견뎌냈습니다.
못다 한 재회, 그러나 끝나지 않은 이야기
해방 후, 박열 의사는 가네코 후미코의 유해를 고향인 경북 문경으로 보냈습니다. 일본인이었으나 누구보다 조선을 사랑했던 그녀는 지금도 문경 땅에 잠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박열 의사 본인은 6.25 전쟁 중 납북되어, 평생 그리워하던 아내의 묘소에 끝내 가보지 못한 채 평양에서 서거했습니다.
[울타리없는학교 교장의 한마디]
후쿠오카 형무소 터를 지척에 두고도 발길을 돌려야 했던 그날, 제 마음속엔 이 두 사람의 불꽃 같은 삶이 일렁였습니다. 그들은 국적과 이념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인간 존엄'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위해 싸웠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울타리에 갇혀 있을까요? 그리고 그 울타리를 넘을 용기를 가지고 있나요?
다음 주에는 같은 감옥, 다른 시간 속에서 별이 된 시인 윤동주를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