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언정 좌절하지는 않는다!
크루즈 여행에서 왕언니와 함께 부른 헨델의 ‘울게 하소서’를 통해, 84년을 살아온 어르신들의 삶과 시련을 넘어선 자유와 기쁨을 기린다.
84년의 긴 항해, 그 눈부신 환희를 향하여 : 크루즈에서 울려 퍼질 영원의 아리아
푸른 바다 위를 항해하는 크루즈 선상, 언니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떠난 여행은 그 자체로 찬란한 기적이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열흘 전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지만, 왕언니의 강한 의지 덕분에 기적처럼 회복하여 드디어 마주하게 된 꿈같은 순간이다.
8남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왕언니를 모시고, 막내가 정성껏 준비한 듀엣곡 헨델 오페라 리날도의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 이 한편의 아리아는 아름다운 선율을 넘어, 인생의 거친 파도를 헤쳐 오신 왕언니를 향한 존경의 표현이자 굴곡진 현대사를 관통해 오신 이 땅의 모든 어르신들의 삶에 바치는 거룩한 헌사이다.
시대의 거울 : 바로크의 거장 헨델과 런던의 무대
이 감동적인 아리아를 깊이 음미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음악사가 품은 극적인 배경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함부르크와 이탈리아를 거치며 바로크 음악의 대가들과 교류했던 25살의 청년 헨델은 1710년, 주저 없이 '세계의 수도' 런던행을 택했다. 당시 런던은 '여왕의 극장'을 비롯한 오페라 극장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일반 대중까지 오페라를 즐기는 문화적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노버 선제후의 조건부 허락을 뒤로하고 자유를 누리며 런던에 입성한 헨델은, 1711년 헤이마켓의 퀸스 시어터 무대에 오페라 ‘리날도(Rinaldo)’를 선보였다. 1차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요술 오페라'는 천둥, 번개, 불꽃놀이와 진짜 새떼가 등장하는 등 엄청난 장관을 연출하며 런던 음악계에 거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헨델은 단숨에 런던 최고의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시련을 넘어 해피엔딩으로 : 리날도, 파리넬리, 그리고 펜트하우스
오페라 ‘리날도’의 줄거리는 십자군 기사 리날도와 사랑하는 알미레나 공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녀 아르미다와 이슬람군에 의해 알미레나가 납치되는 시련 속에서, 적군의 정원에 갇힌 알미레나가 자유를 갈망하며 부르는 노래가 바로 '울게 하소서'이다.
“나의 비참한 운명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게 내버려 두소서, 자유를 찾아서...”
이 절제된 아름다움의 아리아는 수 세기를 거쳐 다양한 명작 속에서 영혼의 울림을 전해왔다. 영화 ‘파리넬리’에서는 변성기 전 거세된 비운의 카스트라토가 지닌 천상의 목소리로 재현되어 관객들을 압도했고, 드라마 ‘펜트하우스’ 등 대중문화 속에서도 시련을 극복하는 극적인 모티브로 사랑받아 왔다.
물론 이 찬란한 예술의 이면에는 카스트라토라는 시대의 아픈 역사와, 당대 최고의 스타 파리넬리와 헨델 간의 묘한 인연 같은 흥미로운 일화들도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서사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진실은 명백하다. 인간이 마주하는 가혹한 시련과 고통은 결국 굳건한 신념을 통해 찬란한 해피엔딩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이다.
84년의 항해, 그리고 어르신들께 바치는 헌사
“울지언정 좌절하지는 않는다. 기쁜 마음으로 부르는 ‘울게 하소서’.”
다소 거칠 것으로 우려했던 바다마저 언니의 탑승을 환영하듯 잔잔히 물러난 오늘, 크루즈 무대 위에서 두 손을 맞잡고 올린 우리의 시간은 84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가족을 품고 시대를 버텨낸 왕언니의 위대한 항해와 완벽하게 조응한다.
해방과 전쟁, 경제부흥과 민주화 등, 격동의 현대사를 정통으로 살아내신 어르신들의 삶은 오페라 속 영웅들이 마주한 시련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 그 세월 속에서 흘린 눈물은 결코 좌절의 눈물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개척해 온 거대한 환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자유와 축복을 향한 메시지
이제 거친 항해의 바다를 건너 마주한 이 기쁨의 순간, 우리는 과거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울게 하소서’의 슬픈 선율이 마침내 해방과 자유를 향하듯, 이제는 주어진 삶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시기를 소망한다.
“주어진 이 자유와 평화 속에서, 마음껏 활용하시고 가장 행복해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