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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의 끝에서 만난 한국의 바다: 미국령 사모아 여행기

태평양의 끝에서 만난 한국의 바다: 미국령 사모아 여행기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속에서 사모아 제도는 국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1899년 체결된 베를린 조약으로 사모아는 분할되었고, 동부 지역을 차지한 미국은 1900년 4월 현지 최고 추장들과의 양도 협약을 통해 이 땅을 공식적으로 미국령(United States Territory)

태평양의 끝에서 만난 한국의 바다:
미국령 사모아 여행기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속에서 사모아 제도는 국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1899년 체결된 베를린 조약으로 사모아는 분할되었고, 동부 지역을 차지한 미국은 1900년 4월 현지 최고 추장들과의 양도 협약을 통해 이 땅을 공식적으로 미국령(United States Territory)으로 편입했다. 그렇게 탄생한 곳이 오늘날의 미국령 사모아다.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한 이 작은 섬에는 미국 제63호 국립공원이 있다. 1993년, 생태적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을 50년간 연방 국립공원관리국(NPS)에 임대하기로 사모아 추장들이 합의하면서 조성된 이 공원은 여의도 면적의 약 다섯 배에 달한다. 울창한 열대우림과 투명한 산호초, 그리고 인간의 손길이 덜 닿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인상적이다.
 

 
‘화산이 빚고, 바다가 품은 국립공원’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다. 크루즈 여행 중 만난 한 미국인 커플이 “미국 내 모든 국립공원을 완주하는 꿈을 이곳에서 마침내 이뤘다”며 감격해하던 모습은, 이 공원이 지닌 상징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미국령 사모아 여행의 백미는 단연 자연이다.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투 달러 비치(Two Dollar Beach)’는 이름처럼 한때 2달러, 현재는 5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해수욕과 현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소박한 명소다. 보다 역동적인 풍경을 원한다면 해발 500m의 알라바 산(Mount Alava)에 오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정상에 서면 남태평양에서 가장 깊은 항구로 알려진 팡오팡오(Pago Pago) 항과, 이를 병풍처럼 둘러싼 웅장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덥고 습한 전형적인 열대 기후지만, 비가 내린 뒤 촉촉해진 숲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이곳만의 매력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순간이다.
 
미국령 사모아의 면적은 약 200㎢로 우리나라 진도보다 조금 크고, 인구는 약 5만 5천 명에 불과하다. 미국 영토 가운데 유일하게 적도 남쪽에 위치한 이곳은 지리적으로도 특별하다. 그리고 한국인에게는 또 하나의 각별한 의미를 지닌 땅이다. 1958년, 한국 최초의 원양 어선이 팡오팡오 항구에 닻을 내리며 우리 원양어업의 역사가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수도 팡오팡오 항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스타키스트(StarKist) 공장이다. 화려한 기업 성공의 이면에는 척박한 바다를 개척해 온 원양어업 선구자들의 눈물이 있다. 1960년대, 가난했던 조국에 외화를 벌어다 주기 위해 수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이 먼 남태평양으로 향했다. 항구 어귀에 자리한 한국 선원 묘지에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국땅에 잠든 이들이 모셔져 있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역시 젊은 선장 시절 이 바다를 누비며 참치를 잡았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떠받친 초석이 되었음을 떠올리니, 푸른 바다는 더 이상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았다. 묵념 끝에 코끝을 스치는 짠 내음은, 그들의 간절했던 그리움처럼 오래 가슴에 남았다.
 
일반 관광객에게 스타키스트 공장은 외관만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지만, 우리 일행은 지난 9월 운 좋게도 공장을 직접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공장장님의 따뜻한 배려였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먼 길에서 온 방문객을 위해 직접 현장을 안내하며, 스타키스트가 지역 사회에서 갖는 의미와 생산 공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원어(原魚) 처리 능력을 자랑하는 스타키스트 사모아 공장에는 현지인을 포함해 약 3,1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현장을 직접 마주하니 “스타키스트가 사모아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공장장님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에는, 그날의 설렘과 타국에서 일궈낸 우리 기업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공장이 여행자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서사에 있다. 1960년대, 잡은 참치를 미국의 거대 기업 스타키스트에 납품하던 한 젊은 한국인 선장이 반세기 넘는 시간이 흐른 뒤 그 회사를 인수했다는 사실은, 다시 떠올려도 영화 같은 반전이다.
 

 
2008년 동원산업이 델몬트 푸즈로부터 스타키스트를 인수한 사건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키고, 미국 내 점유율 40%에 육박하는 부동의 1위 브랜드로 성장시킨 저력은 한국 기업의 끈기를 상징하는 듯하다. 기름에 담긴 참치가 익숙한 우리와 달리, 현지에서 흔히 소비되는 물에 담긴 ‘알바코어(날개다랑어)’ 통조림은 현지 입맛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전략의 결과다.
 
현재 스타키스트는 미국령 사모아에서 가장 큰 민간 고용주다. 우리 선배들이 피땀 흘려 개척한 이 바다에서, 이제는 한국 기업이 현지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지역 경제를 이끌고 있다. 팡오팡오 항구에 우뚝 선 스타키스트 로고를 바라보며 느낀 묘한 뭉클함은, 아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감정일 것이다.
 
미국령 사모아 여행은 관광을 넘어, 태평양의 자연과 한국 원양어업의 역사를 함께 마주하는 시간이다. 친절했던 공장장님과의 만남, 팡오팡오의 파도 소리와 공장의 활기찬 소음이 어우러진 풍경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이곳은 분명, 의미 있는 여행지로 기억될 것이다.
 

원문
미국령사모아사모아국립공원태평양여행원양어업의역사팡오팡오스타키스트동원산업
김은옥 작가글 59편 · 한국어로 씁니다

울타리없는학교 교장 / 크루즈 여행 전문 인솔자 010-3261-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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