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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융합의 켜, 시칠리아 팔레르모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역사와 문화적 융합을 대표하는 대성당, 산 카탈도 교회, 마르토라나 교회의 건축적 특징을 살펴본다. 정복과 지배의 역사가 오늘날 독특한 문화유산으로 이어진 과정을 소개한다.

지중해의 한가운데,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대륙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한 섬 시칠리아. 이곳은 수천 년의 역사 동안 격랑의 바다 그 자체였다. 페니키아와 카르타고, 그리스, 로마, 비잔틴, 아랍, 노르만, 호엔슈타우펜, 앙주, 아라곤, 스페인 부르봉에 이르기까지 무려 13개가 넘는 통치 세력이 이 섬을 차지하기 위해 깃발을 꽂았고 거쳐 갔다.

대륙의 욕망이 충돌하던 지중해의 길목에서 시칠리아의 조상들이 견뎌내야 했던 세월은 숱한 침략과 전쟁으로 가득 찬 모진 시간이었으리라. 그러나 역사란 참으로 오묘하다. 이땅에서 살다간 이들에게는 피와 눈물의 세월이었을 그 정복의 역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후손들에게는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례없이 독특하고 찬란한 문화적·건축적 자산으로 탈바꿈했으니 말이다.

시칠리아의 주도(州都) 팔레르모(Palermo)의 골목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이탈리아어, 아랍어, 히브리어 등 3개 언어로 나란히 적힌 도로 표지판이다. 한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문명과 언어가 공존했던 그 고단하고도 화려했던 흔적들이 화석처럼 레이어(Layer)를 이루며 도시 전체를 덮고 있다. 그 다층적 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팔레르모의 대표적인 건축 유산들을 따라가 본다.

팔레르모 대성당, 시대를 거치며 다듬어진 건축 역사 박물관

팔레르모 중심가에 웅장하게 서 있는 팔레르모 대성당(Cattedrale di Palermo)은 단 하나의 양식으로는 결코 정의할 수 없는, 도시의 복잡다단한 역사를 한 몸에 체현하고 있는 거대한 건축적 화석이다.

1185년 노르만 왕조 시절, 팔레르모의 대주교이자 막강한 재상이었던 구알티에로 오파밀리오(Gualtiero Offamilio)에 의해 처음 건립된 이 성당은 본래 그 이전에 이슬람 아랍인들이 지었던 모스크 터 위에 세워졌다. 이후 세월이 흐르고 주인이 바뀔 때마다 신기하게도 건물을 완전히 헐지 않고 각 시대의 양식을 위에 덧붙이고 누더기처럼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성당의 외관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으로 경이롭다. 노르만 특유의 요새 같은 웅장한 투구형 탑, 아랍 스타일의 섬세한 기하학적 아라베스크 문양과 둥근 아치, 14~15세기 스페인 아라곤 왕가 영향의 고딕 양식 현관, 그리고 18세기에 덧씌워진 신전 모양의 네오클래식 돔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둥에 여전히 남아있는 코란의 구절과 십자가의 조화는 이곳이 종교 시설을 넘어 동서양 문명이 교차하며 빚어낸 역사적 화해의 장소임을 웅변한다.

산 카탈도 교회, 푸른 하늘 아래 빛나는 분홍빛 아랍 돔의 유혹

팔레르모 대성당이 거대하고 다채로운 종합 선물 세트라면, 벨리니 광장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산 카탈도 교회(Chiesa di San Cataldo)는 아랍-노르만 양식의 정수만을 집약해 놓은 가장 독특하고 정교한 보석이다.

12세기 노르만 왕조의 재상이었던 마요네가 건립한 이 가톨릭 성당은, 멀리서 보는 순간 누구라도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기독교 성당의 지붕 위에 가톨릭의 십자가 대신, 북아프리카 이슬람 모스크에서나 볼 수 있는 3개의 붉고 분홍빛을 띤 반구형 돔(Red Domes)이 앙증맞게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노르만 국왕들은 시칠리아를 정복한 후 아랍의 뛰어난 건축가와 장인들을 배척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등용했다. 그 결과, 외형은 아랍 모스크의 형상을 띠고, 내부 구조는 비잔틴의 모자이크 기법과 기하학적 바닥 장식을 갖췄으며, 용도는 가톨릭 예배당인 ‘아랍-노르만-비잔틴 융합 건축’이라는 세계 유일의 양식이 탄생했다. 장식 없이 고요한 사막의 빛을 품은 황토색 사암 벽면과 붉은 돔은 팔레르모의 푸른 하늘과 대비되어 여행자의 가슴에 강렬한 영감을 남긴다.

마르토라나 교회, 문을 열면 펼쳐지는 황금빛 비잔틴의 반전

산 카탈도 교회 바로 옆에 위치한 마르토라나 교회(La Martorana) 역시 팔레르모가 품은 복합적 역사의 진수를 보여준다. 밖에서 바라본 건물 입구는 17~18세기의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여행자는 12세기 비잔틴 제국의 황금빛 모자이크 세계로 단숨에 타임슬립하게 된다.

천장과 벽면을 채운 성화들은 보석처럼 빛나고, 심지어 기둥 구석구석에는 이슬람 장인의 손길이 남긴 아랍어 조각까지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정복자가 바뀔 때마다 이전 시대의 유산을 파괴하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아름다움을 겹쳐 올린 팔레르모식 포용의 정점이다.

세월을 견뎌낸 유산이 전하는 메시지

이처럼 팔레르모에서는 정복자가 바뀔 때마다 기존의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대신, 이전 문명의 정수를 그대로 둔 채 자신의 문명을 덧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차가운 칼날을 들고 들어온 정복자들조차 이 섬이 지닌 뛰어난 미학 앞에서는 스승의 예로 머리를 숙였고, 지배자의 유산을 파괴하기보다 그 위에 자신들의 신앙과 예술을 수놓았다. 덕분에 오늘날의 팔레르모는 문명 간의 피비린내 나는 충돌이 아닌, ‘융합과 흡수’가 만들어낸 지구상 유일무이한 건축 박물관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지중해의 푸른 파도에 밀려왔다 사라져 간 13개의 거대 제국들. 그들이 남기고 간 칼자국과 흉터는 시칠리아의 땅과 조상들에게는 필경 눈물겨운 모진 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이들의 모진 슬픔은 세월의 켜를 타고 화석처럼 굳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찬란한 문화적 자산으로 탈바꿈했다.

도로 표지판의 아랍어 글귀를 지나 팔레르모 대성당의 그늘에 서고, 산 카탈도 교회의 붉은 돔과 마르토라나의 황금빛 모자이크를 바라보는 일. 그것은 예쁜 유적지를 구경하는 차원을 넘어, 거친 시련을 견뎌낸 인간의 삶이 어떻게 위대한 문화적 자산으로 탈바꿈하는지를 목도하는 신성한 여정이다.

지나간 슬픔은 화석처럼 굳어 오늘날 세계인을 불러 모으는 찬란한 영감이 되었다. 시간을 사서 떠난 이 여정에서 팔레르모는 우리에게 나직하게 건넨다. 어떤 모진 세월과 시련도 결국 자신만의 깊고 아름다운 결이 될 수 있음을, 이토록 찬란한 입체적 도시의 풍경으로 증명해 보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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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옥 작가글 59편 · 한국어로 씁니다

울타리없는학교 교장 / 크루즈 여행 전문 인솔자 010-3261-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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