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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변경선에 숨겨진 ‘뉴 코리아‘의 기억: 사모아와 한국의 평행이론

날짜변경선에 숨겨진 '뉴 코리아'의 기억: 사모아와 한국의 평행이론 남태평양의 푸른 심장부, 폴리네시아의 순수한 정서를 오롯이 간직한 곳. 우리에게 ‘사모아(Samoa)’는 대개 일상을 벗어난 지상의 낙원이나 머나먼 이국의 휴양지로 기억되곤 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섬나라의 파도 소리 뒤에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절박했던 순간과 뜨거웠던 삶의 궤적이 고스란

날짜변경선에 숨겨진 '뉴 코리아'의 기억:
사모아와 한국의 평행이론
 

 
남태평양의 푸른 심장부, 폴리네시아의 순수한 정서를 오롯이 간직한 곳. 우리에게 ‘사모아(Samoa)’는 대개 일상을 벗어난 지상의 낙원이나 머나먼 이국의 휴양지로 기억되곤 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섬나라의 파도 소리 뒤에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절박했던 순간과 뜨거웠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 사모아는 가슴 설레이게 하는 여행지를 넘어, 어쩌면 대한민국의 운명이 새롭게 쓰였을지도 모를 ‘제2의 고향’ 후보지였다.
 
시간의 경계에서 마주하는 분단의 역설
 

 
사모아 제도는 지리적으로 하나이나 정치적으로는 둘이다. 서쪽의 독립국 사모아와 동쪽의 미국령 사모아는 같은 민족과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체제 아래 살아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섬 사이를 가로지르는 날짜변경선이다. 불과 220km라는 물리적 거리를 사이에 두고 두 섬은 24시간이라는 기묘한 시차를 공유한다. 독립국 사모아에서 오늘을 보내고 비행기로 20분을 날아 미국령 사모아에 내리면 시간은 다시 어제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시간 여행’ 같은 지리적 특성은 사모아를 신비로운 공간으로 만들지만, 그 이면에는 분단이라는 묘한 공통점이 흐른다. 비록 우리처럼 외세에 의한 비극적 강점은 아닐지라도, 국제 정세 속에서 갈라진 사모아의 모습은 한반도의 독자와 묘한 동질감을 형성한다.
 
태평양을 누빈 한국인의 땀방울과 정겨운 흔적
 

 
사모아와 한국의 인연은 1960~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가난했던 조국을 뒤로하고 남태평양 거친 바다로 나선 원양어업 역군들에게 사모아는 소중한 베이스캠프였다. 한때 2,000명이 넘는 한국인이 이곳에 상주하며 태평양의 참치를 길어 올렸고, 그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마중물이 되었다.
 

 
그 시절의 유산은 오늘날 사모아의 풍경 속에도 깊이 박혀 있다. 한국인이 거의 거주하지 않는 독립국 사모아의 동네 구멍가게 선반에 소주와 고추장, 라면이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준다. 이는 상품 유통을 넘어, 사모아인들의 삶 속에 한국의 식문화가 하나의 일상으로 깊이 스며들었음 의미한다. ‘0.5명의 한국인’이라 불리며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하는 제리 브런트 주사모아 명예영사의 존재 또한 우리가 이 섬을 결코 타국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뉴 코리아’, 사모아로 향할 뻔했던 망명 정부의 기록

 
무엇보다 사모아가 우리에게 특별한 이유는 1950년 한국전쟁의 급박했던 기록 속에 존재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한반도 사수가 불가능해 보였던 절체절명의 순간, 미국 합참은 이른바 ‘한국 포기 계획’을 검토했다. Joseph C. Goulden의 《The untold story of the war》에 따르면 만약 대한민국이 패망할 경우,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와 약 32만 명의 한국인을 해외로 이주시킨다는 극비 시나리오였다.
 
당시 이 ‘뉴 코리아(New Korea)’의 최종 후보지로 낙점된 곳이 바로 사모아 제도의 사바이섬과 우폴루섬이었다. 일본은 민족 감정으로 인해, 사이판 등은 군사적 안전 문제로 제외되었을 때, 사모아는 한국인들이 새로운 터전을 잡고 국가의 맥을 이어갈 유일한 대안으로 거론되었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이 구상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만약 전쟁이 조금만 더 길어졌다면 우리의 출생지는 한반도가 아닌 남태평양의 어느 해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멀고도 가까운 우리 역사의 페이지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사모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사모아는 지리적으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멀고 먼 섬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우리 민족이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마지막으로 기댈 뻔했던 따뜻한 안식처였다.
 
날짜변경선 너머 가장 먼저 아침을 맞이하는 그곳에, 우리는 삶의 터전을 일구려 했던 조상들의 투지와 나라를 잃을 뻔했던 서글픈 계획을 동시에 묻어두었다. 이제 사모아를 하나의 휴양지로만 보지 말자. 그곳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혹은 잊고 싶었던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가 조용히 숨 쉬고 있는 ‘심리적 이웃’이다. 오늘을 살며 어제를 돌아볼 수 있는 사모아의 시간처럼, 우리도 사모아를 통해 한반도의 어제를 기억하고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원문
남태평양한국전쟁망명정부뉴코리아원양어업현대사비화날짜변경선폴리네시아역사기고문한반도운명
김은옥 작가글 59편 · 한국어로 씁니다

울타리없는학교 교장 / 크루즈 여행 전문 인솔자 010-3261-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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