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 그 간판 앞에서 울컥하다.
LA 한인타운, 그 간판 앞에서 울컥하다. LA 코리아타운에서 읽은 한인 이민 120년의 시간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는 약 700만 명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로스앤젤레스(LA)는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다. 오늘날 LA 한인타운은 상업, 문화, 정치적 영향력까지 갖춘 거대한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외관 뒤에는 120여 년에 걸친 이민의 역사와
LA 한인타운, 그 간판 앞에서 울컥하다.
LA 코리아타운에서 읽은 한인 이민 120년의 시간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는 약 700만 명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로스앤젤레스(LA)는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다. 오늘날 LA 한인타운은 상업, 문화, 정치적 영향력까지 갖춘 거대한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외관 뒤에는 120여 년에 걸친 이민의 역사와 치열한 생존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멕시코 크루즈를 마치고 LA에 들렀다. 관광지 대신 발길이 향한 곳은 자연스레 한인타운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북창동 순두부는 이미 긴 대기줄이 늘어서 있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줄이 줄어들지 않는 모습, 그리고 그 줄 속에 현지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음식이 더 이상 ‘이국적 음식’이 아니라 이 도시의 일상으로 스며들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발길을 돌려 들어간 한밭 설렁탕에서 맛본 설렁탕은 서울의 어느 노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멕시칸 직원에게 “원 모어 깍두기”를 청해 국물까지 부어 먹으며 문득 생각했다. 한 그릇의 국밥 속에도 이민자의 시간과 노동이 스며 있겠구나. 타지에서 지켜낸 맛은 시장기를 달래주는 한끼 식사를 넘어선 한민족 정체성의 보루였다.
한국인의 미국 이민은 1885년, 서재필 등 개화파 인사들의 망명에서 비롯되었다.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나며 본격적인 노동 이민이 시작되었다. 낯선 땅에서의 고된 노동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동시에 조국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이후 일부 이민자들은 미 본토로 이동해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 정착했다. 이곳에 세워진 ‘파차파 캠프’는 미주 최초의 한인 집단 거주지로 평가된다. 이를 이끈 인물이 바로 안창호 선생이다. 그는 노동자들을 조직해 공동체를 세우고, 엄격한 규율을 통해 자조적 삶의 기반을 마련했다. 밤 9시 소등, 도박과 폭음 금지, 청결 유지 같은 규칙은 공동체 생존을 위한 질서였다. 노동으로 번 돈은 독립자금으로 모였고, 그들의 땀은 민족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이민의 양상은 달라졌다.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은 한인 사회의 전환점이 되었다. 전문직과 가족 초청 이민이 확대되면서 한인들의 LA 정착은 급증했다. 당시 도시 재편 과정 속에서 한인들은 비교적 저렴해진 상권을 기반으로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식료품점, 세탁소, 식당, 마켓이 하나둘 생겨났고, 상업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72년의 ‘한글 간판 달기 캠페인’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타운 내 상점들이 한글 간판을 내걸기 시작하면서 거리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두 달 만에 60여 개 업소가 동참했다고 한다. 이는 그저 디자인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는 이곳의 구성원이며 동시에 한국인이다”라는 선언이었다. 1980년 LA 시의회가 코리아타운을 공식 지명으로 인정한 일은 이러한 노력의 제도적 결실이었다.
그러나 성장의 역사에는 아픔도 있었다. 1992년 LA 폭동은 한인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약탈과 방화 속에서 수많은 한인 상점이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한인 사회는 다시 일어섰다. 공동체의 연대와 자구 노력은 코리아타운을 재건했고, 오히려 정치적 참여와 권익 신장의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LA 한인타운을 걷다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플라자’라 불리는 쇼핑몰 구조와 한글 간판의 서체, 색감은 어딘가 1970~80년대 한국을 닮아있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 시절의 공기가 응축되어 남아 있는 듯하다.
나는 한동안 거리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그 글자 하나하나에 이민자의 노동과 책임, 좌절과 희망이 스며 있는 듯했다. 간판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그 안에는 분명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코리아타운은 한낱 평범한 상권이 아니다. 그것은 이민자들이 낯선 땅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흘린 땀의 지도이며, 디아스포라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고향이다.
간판은 상호명을 넘어 비장한 선언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살아냈고,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지켜냈다고. LA 한인타운의 거리를 걷다 울컥해진 이유는 아마도 그 사실을 절절히 체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민은 숫자로 환산되는 통계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이며, 코리아타운은 그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살아 있는 역사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