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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의 숨결이 머무는 도시, 크레모나(Cremona)

이탈리아에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소도시들이 많다. 이탈리아 여행 계획 때마다 늘 마음 속에서는 작은 순례길처럼 그곳들을 하나하나 밟아가기를 꿈꾸지만, 현실의 여행길에서 소도시는 늘 뒷걸음치는 이정표로만 스쳐 지나가기 일쑤였다. 베네치아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Cremona’라는 표지판을 마주했을 때도, 그저 또 하나의 놓친 도시로만 남을 줄 알았

이탈리아에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소도시들이 많다. 이탈리아 여행 계획 때마다 늘 마음 속에서는 작은 순례길처럼 그곳들을 하나하나 밟아가기를 꿈꾸지만, 현실의 여행길에서 소도시는 늘 뒷걸음치는 이정표로만 스쳐 지나가기 일쑤였다.
 
베네치아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Cremona’라는 표지판을 마주했을 때도, 그저 또 하나의 놓친 도시로만 남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순간 마음 한가운데에는 묘한 떨림이 일어났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곳에는 나의 소중한 제자가 유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제자는 고등학교 시절, 첼로를 처음 손에 쥔 순간부터 현악기의 매혹에 사로잡혔다. 누구보다 악기를 열심히 연습하던 그는, 명문대학에 진학하고서도 뜻밖의 결심을 내렸다. 연주가 아닌 제작자의 길을 걷겠다고, 바이올린의 심장부로 들어가겠다고, 낯선 도시 크레모나로 떠난 것이다.
 
그에게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더 깊은 열망이 있었던 게다. 그 선택은 거대한 기회비용을 치르는 길이었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가는 유일한 여정이었다. 그 이후로 크레모나는 나에게 그저 흔한 이탈리아의 소도시가 아니라, 그 청년의 꿈이 자라나는 땅이자 언젠가 반드시 함께 찾아가야 할 특별한 약속의 도시가 되었다.
 

 
크레모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의 도시’다. 16세기 초, 이곳에서 안드레아 아마티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바이올린의 형태를 완성시켰다. 이어 그의 손자 니콜로 아마티가 그 기술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고, 마침내 그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역사에 길이 남을 장인이 된다. 바로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그의 이름은 곧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전설적 악기와 연결되며, 지금도 전 세계 음악인들의 동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크레모나는 단순히 악기를 만드는 도시가 아니라, 수 세기 동안 수많은 장인들이 나무를 깎고 소리를 빚으며, 음악이라는 예술을 살아 숨 쉬게 만든 거대한 공방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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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크레모나에는 여전히 170명이 넘는 인증된 악기 제작자들이 활동한다. 골목을 걷다 보면 유리창 너머로 장인들이 나무를 다듬고, 현을 매만지고, 마지막 음색을 조율하는 모습이 보인다. 언젠가 내가 아끼는 제자의 이름도 그 골목 어딘가에 새겨질 것이다. 그 순간, 이 도시는 내게 더없이 개인적인 추억과 자부심으로 다가올 것이다. 가격은 몇천만 원을 훌쩍 넘기도 하지만, 원한다면 나만의 바이올린을 주문해 평생의 음악을 함께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크레모나가 가진 매력이다.
 

 
이 도시에는 ‘바이올린의 성지’라 불릴 만한 장소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Museo del Violino’는 꼭 들러야 할 곳이다. 바이올린의 역사와 제작 과정을 만날 수 있는 전시관이자, 스트라디바리우스 악기들이 실제로 보관된 공간이다. 주말마다 열리는 연주회에서는 실제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하는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다.
 
이 공연장은 일반적인 콘서트홀이 아니라, 바이올린의 섬세한 음색을 완벽하게 살리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아우디토리움이다. 바흐와 비발디의 선율이 공기 중에 가만히 흩날릴 때, 관객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세기를 넘어 이어져온 장인들의 영혼을 함께 호흡하는 듯한 감각을 맛보게 된다.
 

 
크레모나는 음악만의 도시가 아니다. 도시의 중심에 서 있는 ‘두오모 성당’은 로마네스크에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까지 여러 시대의 흔적을 품고 있다. 성당 내부를 장식한 프레스코화와 조각들은 신앙과 예술이 뒤엉켜 남긴 깊은 숨결을 보여준다. 그 옆의 ‘토레 델 마디오’에 오르면, 중세의 도시 전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붉은 지붕들이 줄지어 이어진 풍경은 마치 오래된 악보 위에 찍힌 음표처럼 질서 정연하다.
 

 
또한 크레모나는 비옥한 평야 위에 자리한 농촌 도시이기도 하다. 무화과와 포도, 싱그러운 채소와 고소한 치즈, 그리고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살라미는 크레모나의 밥상을 풍요롭게 한다. 특히 꿀과 아몬드가 박힌 전통 디저트 ‘토로네(Torrone)’는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풍미로, 여행자의 입에 오래 남는다. 마치 음악처럼 부드럽고, 역사처럼 오래가는 맛이다.
 
크레모나는 나에게 평범한 여행지 중의 하나가 아니라, 기다림의 도시다. 제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방을 여는 날, 나는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때 크레모나는 더 이상 지도 속 낯선 도시가 아니라, 나와 깊이 얽힌 의미가 될 것이다. 음악과 건축, 음식과 사람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하모니 속에서, 나는 이 도시가 왜 ‘바이올린의 숨결이 머무는 곳’이라 불리는지를 온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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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옥 작가글 59편 · 한국어로 씁니다

울타리없는학교 교장 / 크루즈 여행 전문 인솔자 010-3261-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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