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아(Capua), 자유를 향한 메아리
카푸아(Capua), 자유를 향한 메아리 김은옥 칼럼 나폴리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맞닥뜨린 초록색 이정표, ‘카푸아’. 작렬하는 태양 아래 무심히 서 있는 안내판을 바라보며, 나는 불현듯 중학생 시절 단체 관람했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남부 이탈리아의 평야 한가운데 자리한 카푸아는 한때 로마 제국의 부와 권세를 자랑하던 도시였다. 올리브와 포도밭이
카푸아(Capua), 자유를 향한 메아리
김은옥 칼럼
나폴리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맞닥뜨린 초록색 이정표, ‘카푸아’. 작렬하는 태양 아래 무심히 서 있는 안내판을 바라보며, 나는 불현듯 중학생 시절 단체 관람했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남부 이탈리아의 평야 한가운데 자리한 카푸아는 한때 로마 제국의 부와 권세를 자랑하던 도시였다. 올리브와 포도밭이 부드러운 언덕을 감싸고, 저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잔잔히 숨을 고르고 있는 풍경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요하지만, 과거의 함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메아리처럼 남아 있다.
오늘날 카푸아는 한적하고 소박한 도시다. 여행객을 맞이하는 것은 오래된 중세 성문과 작은 광장뿐이다. 하지만 2천 년 전, 이곳에는 로마에서 두 번째로 큰 원형경기장이 있었고, 검투사들의 땀과 함성, 관중의 환호로 가득 찬 열기의 도시였다.
기원전 73년, 카푸아의 검투사 훈련소에서 70여 명의 노예가 쇠사슬을 끊고 탈출했다. 그 중심에는 트라키아 출신의 스파르타쿠스가 있었다. 원래 로마 군인이었던 그는 운명의 장난으로 노예가 되었고, 목숨을 담보로 검투 경기에 내몰렸다.
자유를 빼앗긴 자에게 더는 잃을 것이 없었다. 스파르타쿠스와 동료들은 검투사의 무기를 움켜쥐고 훈련소 문을 부수며, 노예들의 반란이라는 불씨를 지폈다. 그들의 반란은 삽시간에 수천 명의 노예와 억눌린 이들을 불러 모았고, 2년 동안 로마군과 맞서 싸우며 자유를 향한 절박한 행진을 이어갔다. 그들은 로마군의 정예부대를 여러 차례 격파하며, 한때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저항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일시적 도망이 아니었다. 다른 지역의 노예들이 합류하면서 그들의 무리는 점점 커져 갔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노예들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실레지아의 해적들과 배를 구하는 거래까지 벌였다.
하지만 로마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원로원 의원 그라쿠스와 크라수스의 정치적 힘겨루기 속에서, 크라수스는 수석 집정관으로 선출되어 직접 노예 반란 진압에 나섰다. 결국 강철 같은 로마 군단 앞에서 노예들의 꿈은 무참히 좌절되었고, 포로가 된 이들은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다.
그럼에도 역사 속 스파르타쿠스의 이름과 의지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전설적인 장면, 크라수스가 포로들에게 ‘누가 스파르타쿠스냐?’고 물었을 때, 무더기로 앉아있던 포로들이 차례로 일어나 ‘내가 스파르타쿠스다!’라고 외치던 순간은 자유와 연대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2,00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비로소 노예제도는 폐지되었지만, 그의 외침과 의기는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메아리친다.
영화 속 장면은 실제와 조금 달랐지만, 그 감동은 여전히 강렬하다. 커크 더글라스가 주연한 영화에서는, 반란 진압 후 스파르타쿠스의 연인 바리니아가 면천된 후, 십자가에 묶인 그에게 그의 어린 아들을 보여주며 “이 아이는 자유인이며, 당신의 싸움은 헛되지 않았다.”는 말을 남긴다.
피비린내 속에서 사라진 외침이지만, 그들의 이름은 역사가 기록한 자유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카푸아를 먼발치에서 지나치며, 평야 위를 달리는 반란군의 함성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오늘날의 카푸아는 평온하고 소박하지만, 그 땅에는 여전히 자유를 향한 투쟁의 숨결이 흐르고 있다. 역사의 메아리는 비록 잊힌 듯 보이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