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의 시간 속으로 — 역사와 음악, 예술의 도시를 걷다
제노바의 시간 속으로 — 역사와 음악, 예술의 도시를 걷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부서지는 항구 도시 제노바(Genova). 바람에 실려 오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제자를 만났다. 그는 밀라노 근처의 작은 마을 트레모나(Tremona)에서 바이올린 제작을 배우고 있는 젊은 제자이다. 나무 냄새가 배인 그의 손끝에는 음악의 씨앗이 깃들어
제노바의 시간 속으로 —
역사와 음악, 예술의 도시를 걷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부서지는 항구 도시 제노바(Genova). 바람에 실려 오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제자를 만났다. 그는 밀라노 근처의 작은 마을 트레모나(Tremona)에서 바이올린 제작을 배우고 있는 젊은 제자이다. 나무 냄새가 배인 그의 손끝에는 음악의 씨앗이 깃들어 있었다. 우리는 오래된 도시의 골목을 따라 걸으며 세 가지 주제—역사, 음악, 예술—로 제노바의 시간을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콜롬부스의 발자취를 따라 —
페라리 광장에서 시작하는 역사 산책
첫걸음은 제노바의 심장이라 불리는 페라리 광장(Piazza De Ferrari)이었다. 거대한 분수를 중심으로 고전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며, 햇살을 받은 물줄기는 무지개를 그 뒤로 웅장하게 서 있는 카를로 펠리체 극장(Teatro Carlo Felice)의 흰 기둥은 도시의 품격을 더했다.
광장을 지나 콜롬부스의 생가(Casa di Cristoforo Colombo)로 향했다. 붉은 벽돌의 소박한 2층 집, 제노바의 대표 탐험가 콜롬부스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곳이다. 제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선생님, 음악가도 탐험가 같아요. 나무 안에 숨어 있는 소리를 찾아가는 탐험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모든 사물과 상황이 음악과 통하는 자신만의 비밀스런 연결 통로를 꿰차고 있는 듯했다. 바로 그곳, 세월의 흔적이 묻은 벽돌 사이에서 우리 모두의 여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어 소프라노 문(Porta Soprana)으로 향했다. 제노바의 옛 성곽 일부로, 도시의 중세 시대를 증언하는 장엄한 문이다. 보수 공사 중이라 완벽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보수공사도 역사의 한 페이지니까”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제자가 웃으며 말했다. “역시!, 선생님다우시네요!!” 회색 돌로 쌓인 아치형 문을 지나며, 우리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중세의 골목 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베르디의 선율 속으로 — 제노바의 음악 여행
두 번째 여정은 제자의 세계, 음악의 길이었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 카를로 펠리체 극장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1828년에 세워진 이 극장은 전쟁으로 한때 파괴되었지만, 복원 후 지금도 베르디(Giuseppe Verdi)의 오페라가 자주 무대에 오른다. 벨벳 커튼 뒤로 펼쳐질 「라 트라비아타」와 「리골레토」의 선율이 들려오는 듯했다. 극장 건물 안에는 파가니니의 작은 동상이, 극장 밖에는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 가리발디 장군의 거대한 동상이 위풍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극장을 나서며 우리는 팔라초 두칼레(Palazzo Ducale)에 들렀다. 제노바 공화국 시절 정치의 중심이었던 이 건물은 지금은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사용된다. 마침 그날, 거대한 도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과거 이곳에서 베르디의 음악회도 자주 열렸다고 한다. 역사와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 바로 제노바의 진면목이었다.
이어서 베르디가 종종 산책하며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지는 제노바 대성당으로 더 많이 알려진 산 로렌초 대성당(Cattedrale di San Lorenzo)으로 향했다. 아라비아풍의 흑백 줄무늬 대리석이 장식된 성당의 외벽은 장엄했고, 내부에는 중세의 성음악이 울려 퍼지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제자는 대성당의 잔향을 듣더니 조용히 말했다. “바이올린의 울림통도 이런 공간을 닮은 것 같아요. 깊고, 오래 머무는 소리.”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음악이 공간을 닮는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클라인구티 카페(Caffè Klainguti). 베르디가 생애 40년 동안 제노바에 머물며 자주 찾던 곳이다. 우리는 베르디가 즐겼다는 브리오슈 ‘팔스태프(Falstaff)’와 카푸치노를 맛보았다. 벽에는 그의 초상과 손 글씨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제자와 나는 커피잔을 마주 들며 느꼈다. 음악이란, 거창한 무대 위가 아니라 이런 일상의 한 모퉁이에서 피어나는 예술임을.
비아 가리발디 — 귀족의 예술과 세계문화유산의 거리
마지막 여정은 제노바의 보석 같은 거리 비아 가리발디(Via Garibaldi)였다. 불과 250미터 남짓한 거리이지만, 16세기에 지어진 제노바 귀족들의 화려한 궁전들이 줄지어 서 있다. 팔라초 비앙코, 팔라초 로소, 팔라초 도리아-투르시 등 44개의 궁전 중 16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시청사로 이용되고 있는 건물에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이 보관되어 있다. 매년 파가니니 음악경연대회 우승자만이 그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팔라초 비앙코 안에는 루벤스와 반 다이크의 작품이, 팔라초 로소에는 제노바 화파의 색과 빛이 숨 쉬고 있었다. 소리에서 색으로, 색에서 이야기로 이어지는 예술의 끈이 이곳에 살아 있었다.
역사와 음악, 예술의 교향곡이 울려퍼지는 제노바
해 질 무렵, 우리는 다시 페라리 광장으로 돌아왔다. 금빛으로 물든 분수의 물방울이 반짝이며 도시의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제노바는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러 있는 항구가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역사와 음악, 예술이 서로의 선율을 이루며 살아 숨 쉬는 교향곡 같은 도시였다.
제자가 하루를 정돈하듯 말했다. “선생님, 이 도시의 공기 속에도 소리가 있어요. 그 소리를 제 악기 속에 담을 수 있다면, 제 바이올린은 제노바의 바람처럼 울릴 것 같아요.” 그날, 나는 제자에게서 더 이상 소년의 얼굴이 아닌, 소리를 좇는 장인의 눈빛을 보았다. 제노바의 골목마다 깃든 시간과 향기, 그리고 음악이 우리 둘을 또 다른 여정으로 이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