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가 빚어낸 찬란한 은막(銀幕) Ⅱ
《시네마 천국》, 《말레나》,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을 통해 시칠리아의 공동체적 연대와 전쟁의 상흔, 인간 본성의 어두운 이면, 고대부터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성을 살펴본다. 이어 12월 팔레르모 여정의 의미를 되짚는다.
앞서 1부에서 거친 정복의 역사 속에서 생존을 위해 피어난 자생적 비극(《대부》)과 신화적 자연의 심연(《그랑블루》)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시선을 옮겨, 전쟁의 상흔 속 공동체의 연대, 대중의 광기가 빚어낸 인간 본성의 어두운 이면, 그리고 고대부터 이어져 온 시간의 연속성을 담은 나머지 세 편의 영화를 통해 시칠리아의 더 깊은 속살로 걸어 들어가고자 합니다.
3.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전쟁의 상흔 속에서 피어난 연대와 기억의 양식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시칠리아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 속 가상의 마을 ‘잔칼도’의 실제 무대 중 하나인 체팔루(Cefalù)는 노르만 양식의 거대한 대성당과 아기자기한 해안가가 맞닿은, 역사의 켜가 두껍게 쌓인 도시다. 전쟁이 남긴 가난과 폐허 속에서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안식처는 낡은 극장 ‘파라디소’였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인문학적 정서는 ‘노스탤지어(향수)’와 ‘공동체적 결속’이다. 시칠리아는 근현대사에서도 늘 소외되고 억압받는 남부의 섬이었다. 이탈리아 통일(리소르지멘토) 이후에도 북부 중심의 발전에서 배제되어 수많은 젊은이가 고향을 등지고 이민선에 몸을 실어야 했다. 주인공 토토가 고향을 떠나 성공한 감독이 된 후 돌아오는 서사는, 시칠리아인들이 겪어야 했던 디아스포라(Diaspora)의 아픔을 그대로 투영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슬픔을 절망으로 놔두지 않는다. 불에 타버린 극장을 함께 재건하고, 잘려 나간 필름 조각들을 보며 함께 웃고 울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모진 역사적 풍파 속에서도 결코 깨지지 않았던 시칠리아식 공동체 의식을 보여준다. 체팔루의 해안가에서 밤바다를 배경으로 스크린을 띄우던 야외 상영 장면은, 척박한 현실을 예술과 연대의 힘으로 위로받던 섬사람들의 가장 아름다운 생존 양식이었다.
4. 《말레나 (Malèna)》: 군중의 광기와 역사적 격변이 파괴한 여신 잔혹사
마찬가지로 토르나토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모니카 벨루치가 주연한 《말레나》는 시칠리아의 역사성이 가진 ‘가장 어두운 심리적 이면’을 바로크 양식의 거리를 통해 폭로한다. 영화의 배경인 시라쿠사의 오르티지아(Ortygia) 섬은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웅장한 바로크 건축물들이 눈부신 햇살을 반사하는 곳이다.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광장은, 역설적이게도 한 여성을 향한 대중의 집단적 광기와 폭력이 자행되는 잔혹한 단두대로 변모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40년대는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이 종말을 고하고 연합군이 진주하던 역사적 격변기였다. 시칠리아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대전기 내내 가장 치열한 전장(戰場)이었으며, 주민들은 극심한 기아와 생존의 위협에 시달렸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말레나》는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거대 악이 평범한 개인들의 도덕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추적하는 텍스트다.
광장의 군중들은 자신들의 결핍과 전쟁의 공포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말레나'라는 무력하고 가녀린 개인에게 투사하여 마녀사냥을 벌였다. 하얀 대리석 광장은 인간의 겉치레와 위선을 상징하며, 그 위를 걸어가던 말레나의 고독한 발소리는 시칠리아가 역사 속에서 겪어낸 수많은 침략과 억압의 고통을 은유한다. 아름다움이 죄가 되던 시대, 오르티지아 광장은 역사적 혼란기 속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비추는 가장 가혹한 무대였다.
5.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에서 마주한 시간의 연속성
시칠리아가 품은 역사의 층위는 근현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은 고대 그리스 시절 과학의 중심지였던 시라쿠사(Syracuse)로 관객을 안내한다. 영화는 아르키메데스가 고안한 시간의 균열을 여는 장치를 찾아 시라쿠사의 고대 유적지와 동굴, 그리고 체팔루의 좁은 골목을 종횡무진한다. 이는 시칠리아가 인류 문명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적·문화적 심장부’였는지를 상기시키는 극적 장치다.
고대 시라쿠사는 아테네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하고 풍요로운 그리스의 식민 도시(마그나 그라이키아)였다. 디오니시오스의 귀, 그리스 원형 극장 등 시라쿠사에 남겨진 유적들은 고대인들의 철학과 과학, 예술이 꽃피웠던 증거다. 영화 속에서 노학자 인디아나 존스가 시공간을 초월해 실제 아르키메데스가 살아서 로마군과 전쟁을 치르던 기원전 212년의 시라쿠사에 당도했을 때 느끼는 경외감은, 시칠리아라는 공간이 가진 역사적 무게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체팔루의 좁은 중세 골목을 삼륜차로 질주하는 현대적 액션과 기원전 고대 유적의 서사가 한곳에서 만나는 이 영화는, 시칠리아가 과거의 멈춰버린 유물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살아있는 시간의 박물관’임을 명징하게 증명한다.
에필로그 : 12월의 팔레르모, 나만의 영화적 서사를 찾아서
다섯 편의 영화가 그려낸 시칠리아는 결코 박제된 관광지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부재 속에서 피어난 핏빛 생존의 기록(대부)이자, 신화적 대자연을 향한 동경(그랑블루)이며, 상흔을 치유하는 공동체의 온기(시네마 천국)이자, 인간 본성의 위선에 대한 고발(말레나)이고, 시간의 영속성을 증명하는 문명의 터전(인디아나 존스)이다. 이 모든 서사가 한데 뒤엉켜 시칠리아라는 거대한 정체성의 지형도를 형성한다.
이제 다가오는 12월, 팔레르모의 겨울 공기를 마주할 시간이다. 팔레르모에서 이미 쏟아낸 다섯 편의 칼럼이 도시의 겉면을 덮은 화려한 껍질을 다루었다면, 스크린이 안내한 이 섬의 깊은 속살은 그 너머의 심연을 바라보게 만든다. 지중해의 서늘한 겨울바람이 대리석 광장과 거친 골목을 쓸고 지나갈 때,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정복자들의 군화 소리가 아니라, 삶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했던 인간들의 나지막한 숨소리일 것이다.
영화가 그토록 사랑했던 섬, 시칠리아. 그 은막의 환상을 품고 떠나는 12월의 여정은, 타인의 렌즈를 통해 보았던 풍경 위에 작가 본인만의 가장 뜨겁고 깊은 인문학적 문장을 새겨넣는 기념비적인 서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