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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가 빚어낸 찬란한 은막(銀幕)Ⅰ

시칠리아의 역사적 층위와 영화적 서사를 살펴보며, 《대부》에 담긴 생존 투쟁과 《그랑블루》가 그리는 신화적 자연관을 탐색합니다.

[연재 안내]

본 칼럼은 시칠리아를 관통하는 방대한 역사적 층위와 영화적 서사를 독자들이 더욱 깊이 있고 편안하게 음미하실 수 있도록 총 2부작으로 나누어 연재합니다.

1부, 본편에서는 정복자들의 발자국이 남긴 상흔 속에서 탄생한 《대부》의 생존 투쟁과, 《그랑블루》가 품은 신화적 자연관을 탐색합니다. 2부에서는 전쟁의 상흔 속에서 피어난 공동체의 기억(《시네마 천국》), 군중의 광기가 빚어낸 비극(《말레나》), 그리고 고대 지적 유산과 시간의 연속성(《인디아나 존스》)을 거쳐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프롤로그 : 정복자들의 발자국이 새겨진 지중해의 교차로

지중해의 한가운데, 마치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 끝에 차여 날아가는 축구공처럼 놓인 섬, 시칠리아. 그러나 역사는 이 섬을 결코 변방의 오브제로 둔 적이 없다. 시칠리아는 문명의 용광로이자, 대륙과 해양이 부딪치며 만들어낸 가장 치열한 화전민들의 땅이었다. 페니키아와 그리스의 닻이 이곳에 내린 이래, 로마의 곡창지대가 되었고, 아랍의 이슬람 문화와 북방 노르만 왕조의 세련미가 뒤섞였으며, 스페인 합스부르그의 웅장한 바로크가 덧칠해졌다.

수많은 지배자가 이 섬을 거쳐 가며 남긴 흔적은 시칠리아에 찬란한 유산인 동시에 깊은 흉터를 남겼다. 이 끊임없는 결핍과 과잉의 역사성은 시칠리아인 특유의 멜랑콜리와 강인한 생명력을 빚어냈고, 이는 20세기 수많은 영화 거장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팔레르모의 거칠고 화려한 골목을 걸어 나온 사유의 시선은, 이제 스크린이라는 은막(銀幕)을 통해 시칠리아가 품은 역사적 토양을 탐색하고자 한다.

본 칼럼에서 국내 관객들에게 가장 친숙한 다섯 편의 영화를 선정한 것은 대중적 흥행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들은 각각 시칠리아가 통과해 온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 자연관, 중세 정복자들의 지적 유산, 근대 귀족 사회의 몰락과 마피아의 탄생, 그리고 현대 전쟁의 참상과 파시즘의 광기까지, 섬의 거대한 역사적 연대기를 가장 정직하고도 입체적으로 분담하여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개의 렌즈는, 이 섬이 겪어낸 역사적 시공간을 비추는 가장 날카로운 거울이다.

1. 《대부 (The Godfather)》 : 국가라는 부재(不在)가 낳은 비극적 자생력

시칠리아를 논할 때 마피아라는 음울한 그림자를 걷어내기는 불가능하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3부작은 범죄 영화의 형식을 빌려 시칠리아의 가장 아픈 역사적 구조를 해부한 웅장한 보고서다. 영화 속 마이클 콜레오네가 적들의 눈을 피해 숨어들었던 고향 사보카(Savoca) 마을은 황량한 바위산과 척박한 토양이 지배하는 곳이다. 이 풍경은 시칠리아 마피아(Cosa Nostra)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필연성을 시각적으로 웅변한다.

사유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마피아는 본질적으로 ‘국가의 부재’가 낳은 기형적 자생체였다. 수세기 동안 이방인 정복자들의 착취에 시달려온 시칠리아인들에게 외래 정권의 법과 공권력은 보호막이 아니라 약탈의 도구일 뿐이었다. 섬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혈연에 기반한 폐쇄적 공동체와 사적 제재 수단을 발달시켰고, 그것이 ‘오메르타(Omertà, 침묵의 계율)’와 마피아의 시초가 되었다.

《대부》는 이 슬픈 비극을 법과 제도의 언어가 아닌, 패밀리의 언어로 풀어낸다. 마이클이 걷던 사보카의 흙먼지 날리는 골목과 빛바랜 석조 건물들은, 거대한 제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오직 스스로를 지켜내야만 했던 시칠리아인들의 고독한 생존 투쟁의 역사적 잔상이다.

2. 《그랑블루 (The Big Blue)》 : 신화의 바다, 인간의 한계를 품는 이오니아의 심연

뤽 베송 감독의 《그랑블루》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시칠리아 타오르미나(Taormina)의 바다를 무대로 삼는다. 산소통 없이 인간의 폐활량만으로 심해를 향해 하강하는 프리다이버들의 이야기는, 이 섬이 가진 서정적이면서도 신화적인 자연관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영화의 배경인 타오르미나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시칠리아에 진출했을 때 가장 먼저 매료되었던 낙원과 같은 곳이다.

시칠리아 동부의 이오니아해는 단지 눈으로 소비하는 관광지가 아니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속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가 돌을 던지던 신화의 바다다. 그리스인들은 이 푸른 심연을 보며 인간의 유한함과 신들의 무한함을 사유했다. 《그랑블루》에서 주인공 자크가 인간의 대지를 버리고 끝없는 심해로 돌아가는 결말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추구했던 자연과의 물아일체(物我一體)이자 신화적 귀환의 궤적과 맞닿아 있다.

절벽 위에 우뚝 솟은 타오르미나의 그리스 원형 극장에서 바라보는 에트나 화산과 이오니아해의 풍경은,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이 대자연의 장엄함 앞에 얼마나 나약한지를 가르쳐준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푸른빛의 깊이는, 곧 시칠리아가 수천 년간 품어온 자연에 대한 경외와 존재론적 성찰의 깊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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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옥 작가글 59편 · 한국어로 씁니다

울타리없는학교 교장 / 크루즈 여행 전문 인솔자 010-3261-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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